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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연예

충격! 토미 페이지 사망소식과 토미페이지 노래 다시듣기

 

 

90년대를 풍미하던 팝스타 토미 페이지가 사망했다. 3일(현지시간) 토미 페이지가 사망한 채로 자택에서 발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아직 정확한 사인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자살 한 것으로 지인들이 매체를 통해 밝혔다. .

 

 

 

 

 

향년 46세....무엇이 그토록 그를 짓눌러 자살에 까지 이르게 한 것인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심한 우을증이 앓았고, 동성 결혼을 한 뒤 세 자녀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찰리라는 이름의 한 남성과 동성 연애 결혼에 골인, 여성의 역할을 도맡아 오면서 세 자녀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 5월 24일 태어난 토미 페이지, 토미 페이지 노래는 지금들어도 감미로운 목소리와 선율로 듣는이의 귀를 자극한다. 게다가 꽃미남 외모까지...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였다. 전성기였던 1994년에는 내한 공연을 열기도 하였다. 미 뉴욕대(NYU) 경영대 출신인 그는, 음악 작업을 끝낸 후 복학하여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  이후에도 싱어송라이터와 빌보드 발행인 등 후에 음악스트리밍 업체인 판도라 부대표까지 맡으며 다망면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 토미 페이지 노래 아일 비 유어 에브리싱(I will be your everything)

토미 페이지는 앨범 '페인팅 인 마이 마인드' 에 수록된 '아일 비 유어 에브리싱 I will be your everything 으로 상당한 유명세를 탔다. 이 노래는 1990년 4월 빌보트차트 1위에 올랐을 뿐더러, 무려 13주 동안 40위권 안에 있었다고 한다.

 

 

 

 

 

 

 

* 토미 페이지 노래 '어 쇼울더 투 크라이 온(A shoulder to cry on)

 

개인적으론 사실 이 노래가 지금까지도 더욱 귓가에 맴돈다. 토미 페이지가 1988년 18세의 나이로 1집 앨범을 발표했을 때 실렸던 노랭이다. '어 쇼울더 투 크라이 온'  'A shoulder to cry on' 은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전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토미 페이지의 사망소식이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것은 비단 그의 인기만이 아니다. 토미 페이지는 외증조 할머니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생전에 토미 페이지 자신도 또한,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토미 페이지의 외증조할아버지가 1900년대 초반 한국에 철도 관련일을 하러 한국에 왔을 당시 시에 만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다고 한다. 

 

 

 


 
 

 

90년대 하이틴 스타 하수빈(나이 37세) 에게 노래 '아엠 폴링 인 러브''I am falling in love' 를 선물하고, 초콜릿 CF에 출연하는 등 국내활동도 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토미 페이지의 죽음은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비록 그는 사망했지만, 아름다운 목소리와 선율이 담긴 토미 페이지 노래는 영원히 사람들에게 불리울 것이다.

 

 

 

 

 

 

아직 토미 페이지 사망에 대한 정확한 사인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우을증은 현대인이 가장 조심해야할 큰 질병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적당하게 관심갖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하게 관심갖는데 익숙하고, 정작 필요한 마음과 마음의 소통은 단절된 채, SNS에만 매달려 수박 겉핥기식 소통과 사회적 교류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현대인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이며,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